때 아닌 건국절 논란
때 아닌 건국절 논란이 한창이다. 이 논란은 신입 독립기념관장 김형석씨의 면접과정의 발언이 재조명 되면서 시작됐다.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지요,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닙니까?
이종찬 광복회장과의 면접과정에서 나온 김형석씨의 대답이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의 한국(조선)인의 법적 지위를 단순히 '일본 국적'으로만 규정함으로써 강제적 식민지 지배의 역사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강제'라는 맥락에 중심을 두는 광복회의 인사들과 '사실'에 중심을 둔 인사들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발언이 건국절 논란과 연결되는 이유는 '국적부여의 주체' 문제 때문이다. 국적을 부여하는 '국가'의 개념을 어느 시점으로부터 인정할 수 있는지의 문제라고 보면 되겠다.우선 1919년을 건국의 해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우리나라는 1919년 임시정부를 수립했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이다. 따라서 1919년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통상 진보정당과 진보 성향의 사학자들의 주장이 이러하다.한편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현 정부가 세워진 1948년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6 · 25 전쟁을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이 확립된 해는 1948년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한민국의 시작은 초대 이승만정부 이후를 대한민국으로서 인정한다는 의견이다. 통상 보수정당과 보수 성향의 사학자들의 주장이 이러하다.그럼 양측의 의견은 살펴보자.
의견1 : "일제시대의 국적은 일본이다" (김형석씨 등)
1. 대한민국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되어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되었다.
2.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시정부는 국가라 할 수 없다.
3.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한일합방한 순간부터 일본 국적으로 편입되어졌다. 올림픽때에도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세계 속에서 바라보는 보편적인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4.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다.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닙니까?
5. 아픈 역사는 기억하되 거기서 주는 교훈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일본 국적으로 살았던건 역사적 사실이다.
6. 일본 여권으로 여행해야만 했던 역사절 사실, 부정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온당하다, 공정했다, 정의로웠다는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의견2 : "일제시대의 국적은 일본이 아니다" (광복회 등)
1. 일제강점기는 우리 정부가 부정한 것이다.
2.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것은 임시정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3.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민국은 3 ·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쓰여있다.
4. 나라는 있었다. 정부가 없었을 뿐. 일제강점으로 국권 행사를 못했던 것 뿐이다.
5. 3 · 1 독립선언서 말미에 '조선건국 4252년'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2333년 건국했다는 뜻이다.
6. 지금 정부도 조선왕조 때 조미통상조약 등 외국과 체결된 조약은 대한민국이 승계한다 결정했다. 즉 나라는 있었다.
7. 박정희 대통령도 일제 강점기에도 나라는 있었고 단지 일본이 불법적으로 한반도를 강점했다는 주장을 견지했다. 그러니 보상도 받아낸 것이 아니냐.
8. 일제강점은 불법이고 당시 체결된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9. '당시 국적이 일본이었다' 하는순간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강제동원 등이 일본 국내 법령에 기초한 합법적 조치였다는 주장을 강화시켜주는 결과가 된다.
생각 정리
이 일이 불거진 것에 대한 정의를 먼저 하고 싶다. 김형석씨의 발언은 문제 소지가 충분하다. '강제 식민지배의 역사 현실을 왜곡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가 어제 세워졌다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원전 2333년에 조선이 건국되고 우리 민족은 이 땅에 살아왔다. 지금에 이르기 까지 (古)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까지 수많은 나라가 생기고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란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개념이다. 즉 허구의 개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로마라는 큰 나라였던 유럽은 이후에 쪼개지고, 또 한 때에는 프랑크라는 큰 나라가 되기도 했다가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국가가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국가의 개념과 범위는 바뀌어 왔다.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교과서에 나오는 국가의 3요소는 국가에 대해 정의했던 수많은 의견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이는 절대진리가 아니다. 즉,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이 있어야 개념이 성립되므로 주권이 없으니 국가가 아니다"라는 말은 해당 전제에 입각한 일개의 의견일 뿐이다. 따라서 이를 절대 진리인양 주장하는 자세는 그저 소통의 문을 닫겠다라는 자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1919년 임시정부가 세워졌고 그에 따라 국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것도 당시대 사람들에게는 조금 거리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나라가 없어서', '나라가 망해서', '나라잃은 슬픔'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것이 아니다. 정말 국가가 없어 우리 민족은 힘들어했고 슬퍼했다. 그 누구도 나라가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라를 찾기 위한 활동이 국내외에서 일어났을것이라 생각한다.
내 의견은 그렇다. 국가란 개념은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무언가'이며 사회적으로는 그 교집합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형화되어있지 않아서 시간의 흐름 뿐 아니라 장소에 따라서도, 사건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일제시대의 국적을 '일본'이라 말할 수 없다. 아니 말하기 싫다. 당시 사회가 협의 했는가? 우리 민족이 이를 인정하고 정치에 참여를 했는가? 아니다. 대외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협의되지 않은 개념의 국가는 우리의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일제시대의 우리 국적은 일본도 아니며 조선도, 대한제국도 아니었다. 미래에 생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의 암묵적 국적이었다. 다만 세계속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당시 일본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해외에 나갈 때에는 국가간 관리를 위해 서류작업이 필요하다. 타국과 일본의 편의를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국적이 일본으로 표기되었을 수 있다. 단지 서류상의 관리목적으로 분류를 하기 위한 도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국적'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저 국가가 망했으니 편의상 일본이라는 분류기호를 쓴 것일 뿐..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건국절을 정의하느냐에 따라 건국절에 대한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정부를 수립하고 현재로 이어지는 국가 서비스를 시작 했는지에 의미를 둔다면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 될 것이다.
민족사적 관점에서 언제 국가 개념이 자리잡았느냐에 의미를 둔다면 기원전 2333년 10월 3일이 건국절이 될 것이다. 다만 이 때를 우리는 '개천절'로써 기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국민이 주권을 갖는 현대적 의미의 국가가 수립된 날에 의미를 둔다면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수립일이 건국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의 교육과정에는 각 의미를 모두 가르치고 어떤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서로 의견을 교류하고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는것을 가르쳐야 하겠다. 서로 토론을 시켜 설득력있는 주장을 가르고 그것이 맞다고 모두에게 답을 내리게 하는것이 아니라^^... (가장 최악의 교육이라 하겠다)
그리고 국가적 토론도 저 따위로 짖어대서는 안되겠다. 왜 감정싸움으로 가는가? 토론은 의견 나눔이다. 서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는. 니가 맞내 내가 맞네싸움이 아니다. 발전이 되겠는가? 일부 될 수도 있겠다. 서로 각자 논리를 강하게 만들테니. 하지만 진정한 발전은 그 두 의견을 모두 보고 숙고하여 결정을 내리는 분들의 몫.
당신은 현재, 그 상황에서, 어떤 의미의 건국절이 가장 크게 와닿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